
솔직히 말하면, 저는 이 영화를 처음에 그냥 가볍게 볼 생각이었습니다. 레이첼 맥아담스가 나온다는 것만으로 골랐고, 시간여행 로맨스 정도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보고 나서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어바웃 타임은 매년 봄이 오면 다시 꺼내 보게 되는 영화입니다. 몇 번을 봐도 질리지 않는 이유가 뭔지, 보면 볼수록 조금씩 다른 답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시간여행
판타지 설정인데 왜 이렇게 현실처럼 느껴질까
이 영화의 장르를 SF 로맨스(Science Fiction Romance)라고 분류하기도 합니다. SF 로맨스란 과학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설정 위에 감정적 서사를 얹은 장르를 말합니다. 그런데 어바웃 타임은 이 장르 안에서 꽤 독특한 위치에 있습니다. 시간여행이라는 설정을 쓰면서도, 그 능력을 거창하게 사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인공 팀은 21살 생일에 아버지로부터 가문의 남자들이 시간여행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듣습니다. 처음에는 당연히 믿지 않죠. 제가 직접 이 장면을 처음 봤을 때도, 이게 어디로 튈지 전혀 예측이 안 됐습니다. 그런데 팀이 이 능력을 사용하는 방식이 흥미롭습니다. 복권 번호를 알아내거나 세계를 구하는 데 쓰는 게 아니라, 말 한마디를 고치거나 어색했던 순간을 다시 살아보는 데 씁니다.
여기서 내러티브 구조(Narrative Structure), 즉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중요해집니다. 내러티브 구조란 사건이 어떤 순서와 논리로 연결되는지를 의미합니다. 어바웃 타임은 시간여행을 반복할수록 오히려 주인공이 더 많은 것을 잃는 방향으로 이야기를 짭니다. 메리와 처음 만났던 번호가 사라지고, 동생 킷캣의 과거를 바꾸자 딸이 아들로 바뀌어 있고, 결국 아버지까지 잃게 됩니다. 능력을 쓸수록 무언가를 고칠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되는 구조입니다.
제 경험상 이런 설정이 오히려 더 공감이 됐습니다. 판타지인데 감정은 너무 현실적이라서, 보고 나서도 계속 생각하게 됩니다. 실제로 심리학에서는 이런 반사실적 사고(Counterfactual Thinking)가 일상적인 후회감과 깊이 연결된다고 봅니다. 반사실적 사고란 "그때 다르게 행동했다면 어땠을까"라고 가정해보는 인지적 과정을 말합니다. 팀이 과거를 계속 되돌리는 행동이 낯설지 않은 건, 우리 모두 머릿속으로 비슷한 일을 반복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출처: 미국심리학회(APA)).
이 영화를 처음 보는 분이라면, 아마 중반까지는 로맨스에 집중하게 될 겁니다. 그런데 후반부로 갈수록 팀과 아버지의 이야기가 조용히 중심을 차지합니다. 저는 이 부분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바닷가를 걷는 장면, 별것 없는 농담, 특별할 것 없는 점심 한 끼가 지나고 나면 전부 다시 돌아가고 싶은 순간처럼 보였습니다.
어바웃 타임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장면들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어둠 속 바(Dark Bar)에서 팀과 메리가 얼굴 없이 서로를 알아가는 장면
- 폭풍우 속 야외 결혼식에서 메리가 "오늘은 완벽했어"라고 말하는 장면
- 아버지와 마지막으로 해변을 걷는 장면
- 팀이 결국 시간여행을 멈추고 하루하루를 처음 사는 것처럼 보내기로 결심하는 장면
현재의 소중함
결혼식날 비바람이 쳤는데 왜 메리는 완벽하다고 했을까
이 영화를 몇 번 보다 보면, 포스터가 왜 그 장면인지 이해가 됩니다. 영화를 아직 보지 않은 분도 그 포스터는 한 번쯤 본 적 있을 겁니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야외에서 흠뻑 젖은 채 웃고 있는 두 사람. 야외 결혼식이 완전히 망가진 것처럼 보이는 날인데, 메리는 그날이 완벽했다고 말합니다.
제가 이 장면에서 멈췄던 이유는, "완벽한 하루"라는 개념을 다시 생각하게 됐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완벽한 날이란 계획대로 모든 것이 맞아떨어지는 날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메리의 기준은 달랐습니다. 완벽한 상황이 아니라, 그 안에서 내가 어떤 마음이었는지가 기준인 것 같았습니다. 솔직히 이건 제가 예상했던 방향이 아니었습니다.
영화의 감성적 메시지는 영화 비평 용어로 테마틱 레조넌스(Thematic Resonance)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테마틱 레조넌스란 영화가 전달하는 주제가 관객의 삶의 경험과 공명하는 정도를 의미합니다. 어바웃 타임이 오래 사랑받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공명의 깊이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감동적인 것이 아니라, 보고 나서 내 하루를 돌아보게 만드는 영화입니다.
또 한 가지, 이 영화를 계속 보게 되는 이유는 레이첼 맥아담스 때문이기도 합니다. 메리가 오래 사랑받는 건 단순히 사랑스러운 캐릭터여서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제 경험상 메리는 완벽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현재에 충실한 사람으로 그려집니다. 팀이 시간을 되돌리고 조정하는 사람이라면, 메리는 주어진 지금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에 가깝습니다. 두 사람의 이 대비가 이야기에 균형을 줍니다.
영화 속 아버지의 조언도 이 주제와 연결됩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똑같은 하루를 두 번 살아보라고 합니다. 처음엔 바쁘게 그냥 지나치고, 두 번째엔 그 안의 작은 것들을 느끼면서. 이건 마음챙김(Mindfulness) 개념과 맞닿아 있습니다. 마음챙김이란 지금 이 순간에 의도적으로 주의를 기울이고, 판단 없이 경험하는 심리적 상태를 의미합니다. 실제로 마음챙김 기반 훈련이 일상의 만족도와 삶의 질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출처: 영국 NHS).
가끔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인생이 완벽해질까?" 팀은 그 능력을 가졌지만, 결국 모든 것을 바꿀 수 없다는 걸 깨닫습니다. 그래서 더 뭉클한 것 같습니다. 능력이 있어도 되돌릴 수 없는 것들, 막을 수 없는 이별, 흘러가버린 평범한 하루들. 팀이 마지막에 시간여행을 그만두기로 결심하는 장면은, 그 모든 것을 받아들였다는 의미로 읽혔습니다.
어바웃 타임은 결국 시간여행 영화가 아닙니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를 묻는 영화입니다. 봄이 오면 한 번쯤 다시 꺼내보시길 권합니다. 처음 보는 분이라면 로맨스만 보지 말고, 팀과 아버지의 이야기에 집중해보시면 또 다른 영화를 보는 느낌이 들 겁니다. 저는 볼 때마다 조금씩 다른 장면에서 멈추게 됩니다. 그게 이 영화를 계속 다시 보게 되는 이유인 것 같습니다.
가슴을 울리는 명대사
<어바웃 타임>이 오랜 시간 사랑받는 이유는 대사 하나하나가 인생의 본질을 꿰뚫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모두가 함께하는 여행이다. 매일매일 사는 동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이 아름다운 여행을 최선을 다해 즐기는 것뿐이다."
영화의 주제를 관통하는 팀의 마지막 독백입니다.
"네가 어떤 인생을 살든, 결국엔 특별할 게 없어. 누구나 다 늙고 똑같아지거든. 하지만 특별한 사람과 함께라면 그 여정이 조금은 덜 지루하겠지."
결혼식 날, 팀의 아버지가 전한 현실적이면서도 따뜻한 축사입니다.
"그저 내가 이 날을 위해 시간 여행을 한 것처럼, 나의 특별하고도 평범한 마지막 날인 것처럼 매일을 살려고 노력할 뿐이다."